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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년 된 씨간장도 있어요…외국인 셰프들 사로잡는 ‘장 트리오’

매체
중앙SUNDAY
게시일
2024. 12. 06
370년 된 씨간장도 있어요…외국인 셰프들 사로잡는 ‘장 트리오’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삶은 콩을 절구에 한가득 넣고 으깨서 메주를 만들 때는 동네 사람들로 마당이 북적거렸고, 그렇게 만든 메주 덩어리들이 발효되면 겨우내 집안은 콤콤한 냄새로 가득했다. 잘 띄운 메주를 소금·물과 섞어 숙성시키면 간장과 된장이 된다. 건조시킨 메줏가루에 고춧가루와 찹쌀을 섞으면 고추장이다. 간장과 된장은 중국과 일본에도 있지만 고추장은 우리에게만 있는 독특한 장이다. 이렇게 담근 장은 두고두고 온갖 식재료와 어울리며 우리 밥상을 채운다. 심지어 오래 전 담가 남겨둔 씨간장에 올해 담근 햇간장을 더하는 겹장 방식으로 그 맛을 수백 년씩 이어가기도 한다. 한국의 전통 장 문화는 그렇게 수천 년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회의에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파라과이 현지에 있었던 이규민 한식진흥원 이사장은 중앙SUNDAY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식의 근간은 장”이라면서 “중국과 일본에도 장 문화가 있지만 우리가 먼저 유산으로 등재하게 됐다. K푸드 확산의 큰 흐름 속에서 세계 셰프들과 미식가들의 이목이 우리 장 문화에 더욱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상업화 우려해 ‘문화’ 붙여 등재

간장·된장·고추장, 이른바 ‘장 삼총사(장 트리오)’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양념이다. 전 세계인에게 ‘건강한 음식’으로 알려진 한식의 핵심은 채식과 발효 음식이고, 그 발효의 중심에 장이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중 음식유산 등재는 굉장히 까다롭고 조심스럽다. 바게트가 아니고 ‘바게트 문화’, 차가 아니고 ‘차 문화’, 김치가 아니고 ‘김장 문화’로 등재하는 이유도 대상 음식의 지나친 상업화·표준화가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상업화 때문에 세계인과의 공유가 가능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K푸드 확산과 더불어 고추장·된장 등 전통 장류를 비롯해 불닭·떡볶이·불고기·양념치킨 등을 만들 수 있는 각종 소스류 수출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78년 발효 기술력의 샘표 고추장 매출 역시 연평균 25% 이상 지속 성장 중이다. 샘표 ‘우리맛연구중심’의 최정윤 헤드셰프는 “2010년부터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와 우리 장·발효 재료 연구를 진행하며 세계 셰프들과 우리 장 문화를 공유해왔다”면서 “해외 셰프들이 오히려 우리 장을 그들의 요리에 얼마나 창의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는지에 놀란다”고 말했다.

“세계 음식과 섞이면 한식 관심 더 커질 것”

한국의 장 트리오에 대한 외국 셰프들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화제의 넷플릭스 콘텐트 ‘흑백요리사’에서 눈길을 끈 메뉴 중 하나는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만든 ‘고추장 버터 스테이크’와 창의적인 ‘비빔밥’이었다. 한식 고유의 채식문화와 발효문화에 빠진 외국 유명 셰프들은 직접 한국을 방문해 전통 장 만들기를 체험한 후 자국의 다양한 소스, 크림·치즈·버터 같은 식재료와 섞어 맛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한식 산업화·연구·미래인재양성을 위한 비영리 사단법인 난로학원과 2024년 LA타임스에서 ‘올해의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모던 한식 레스토랑 ‘Baroo(바루)’의 어광 셰프는 최근 미국 현지에서 된장·고추장 파우더와 된장 거품 등을 활용한 한식 메뉴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강민구 셰프는 한국의 장을 활용해 개발한 ‘밍글링 팟’을 통해 장의 확장성을 실험 중이다.

사실 우리의 장이 한식이 아닌,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식재료·소스들과 섞이는 것을 두고 한식과 장의 본질이 망가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강민구 셰프는 “우리의 장이 세계 여러 식재료와 만나 확장되는 것이야말로 한식과 우리 장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더욱 크게 만드는 길”이라고 말한다.

우리 장 문화에 대한 시급한 고민 중 하나는 한국의 젊은 세대를 사로잡는 데 있다. 도시화·산업화로 집에서 장을 담가 먹는 문화는 사실상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무엇보다 주식인 밥과 반찬을 중심으로 한 우리 식문화 자체가 서구식으로 옮겨가는 흐름 속에서, 장 소비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이규민 한식진흥원 이사장은 “한식 글로벌화뿐 아니라 우리 국민이 우리 먹거리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우리의 고유한 장 문화를 계승·보존하고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게 이어주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을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반가음식과 전래음식의 대가 강인희 선생의 제자인 ‘한국전래음식연구회’ 이말순 요리연구가의 이야기는 의미 깊다. “7~8년 전 서울의 초등학교 3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장을 담근 뒤 아이들이 모르게 시판 간장·된장을 뒤섞어 맛보게 했더니 하나같이 우리가 직접 담근 전통 간장·된장이 맛있다고 하더라. 맛은 이렇게 정직하고, 우리의 DNA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기초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바다 식재료가 풍부한 나라가 없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다채로운 식재료와 전통 장으로 만든 음식을 먹을 기회를 줘야 한다.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이 같다고 했다. 우리 전통 식생활에 대한 기초교육이 필요할 때다.”

· 원문: 중앙SUNDAY, 서정민 기자(meantree@joongang.co.kr), 2024-12-07.
· 링크: joongang.co.kr